[한국관악협회 이교숙 고문님 추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총장 (58.♡.71.110) 작성일17-07-27 09:59 조회6,663회 댓글0건관련링크
- https://youtu.be/kfLs_e9zQ0U 6372회 연결
본문
현 해군가를 작곡한 이교숙 전 해군 군악대장이 별세했다.
해군은 이날 "이 전 대장(예비역 소령)이 지난 22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해군가는 1956년 해군본부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해군가 작사 부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김찬호(대구 MBC 전 프로듀서)씨의 가사에 당시 해군 군악대장이던 고인의 곡을 붙여 탄생됐다.
해군가는 관악기의 힘찬 전주로 시작하여 6/8 박자의 행진곡 풍으로 바다를 수호하는 해군과 파도를 연상시키는 선율로 유명하다. 해군가는 해군의 공식적인 의식마다 연주되며 전 해군장병이 가장 자주 부르는 군가이다.
또한 해군가는 젊은 기상의 웅장함을 바탕으로 군가의 딱딱함을 탈피, 율동적인 무용적 선율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해군의 강한 상징성을 느낄 수 있어 예술성 있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편 고인은 이화여대, 중앙대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 관악지도자 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하며 후진 양성과 작곡에 전념했다.
유족으로는 2남 1녀(장남 이혁·한국폴리텍대학 컴퓨터 응용기계 설계과 교수, 차남 이맥·캐나다 개인 인테리어사업, 딸 이향일)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10시이다. 장지는 인천부평공원묘지이다.
(서울=뉴스1) 조규희 기자
--------------------------------------------------------------------------------------------------------
고인은 강원도 원산출생으로 1944년 만주국 신경(창춘) 방송교향악단의 트롬본 단원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해방 후에는 서울시향의 전신인 고려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48년 9월 해군 군악학교 교관으로 영입됐다. 병조장(현 원사급)으로 시작해 부사관으로 활동하다, 장교교육(해군사관후보생 16기)을 받고 54년 12월 군악장교로 임관했다.
고인은 56년부터 57년까지 워싱턴의 미 해군음악학교(USN)에서 유학을 하며 당시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던 하프와 재즈 빅밴드 이론을 배웠다. 해군가 작곡은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67년 3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에는 이화여대와 중앙대 음대 작곡과 교수, 관악지도자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와 별개로 당시 미8군 연예부대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에게 음악을 개인 교습하는 등 한국 대중음악에도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신중현·김희갑·정성조 등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들이 고인의 제자들이다.
고인은 74년 제6회 서울음악제 때 실내악 ‘Pantomine(팬터마인)’을 출품했고, 77년 7월 15일 부산교향취주악단 창단연주회 때, 황진한(바리톤)과 함께 출연하는 등 많은 공연활동도 펼쳤다. 주요 작품으로 ‘기수’(奇數·1967), ‘음시(音詩) 길’(1975), ‘하프를 위한 환상곡’(1990)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2남 1녀가 있다. 발인은 24일 오전 10시, 장지는 인천 부평공원 묘지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1924년생이신 고인께서는 만주신경교향악단을 거쳐 8.15 해방 직후인 1945년 고려교향악단의 트롬본 주자로 활동하시다가 1949년 해군군악학교 교관으로 입대.
해군군악장교로 근무 시절 미해군군악학교에 유학(1955~1957) - 국내 처음으로 하프를 배워 국내에 도입 1967년 해군군악대장(소령)으로 전역과 동시에 이화여대 음대에 신설된 하프과 첫 교수로 부임.
또 미국 유학 시절 재즈빅밴드 편곡이론도 수강하여 같은 해인 1967년 미8군 연예대행회사인 화양(한국흥행주식회사)에서 연주인들을 대상으로 재즈편곡이론을 강의하셨다.
이를 시작으로 이화여대, 서울대학교, 연세대, 한양대, 서라벌예대(=중앙대학교) 등에서 하프와 작곡이론을 강의하셨으며 국내에 하프 보급과 재즈빅밴드 이론 및 윈드오케스트라 등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셨다.
1950년대 군복무 시절 이전부터 그가 심취해 있던 현대음악을 사회에 나와서 작곡하여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교향악단에서도 현대음악을 전혀 이해 하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그의 음악적인 고뇌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컸으리는 생각이 든다.
윈드오케스트라에 창작곡을 연주케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해군군악동우회 서봉석 註
https://youtu.be/kfLs_e9zQ0U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